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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토리] 전격 분석!! 아카네 호타루의 모든 것 1/3 (#아카네 호타루, #아키즈키 안나, #시오후키, #치녀, #불토리)

Posted by 불토리
2016.08.30 18:54 Another Victory/불토리 컬럼


전격 분석!! 아카네 호타루의 모든 것 1/3

(#아카네 호타루, #아키즈키 안나, #시오후키, #치녀, #불토리)



2016년 8월 29일. 일본의 잡지 SPA!는 지난 15일 아카네 호타루가 자택에서 숨진채 발견되었다는 보도를 냈다. 함께 동거하던 남자친구이자 현 소속사 사장인 하라치 사토시는 페이스북을 통해 "평소 호흡기 장애를 앓고 있었으며 갑자기 증상이 악화된 것 같다"라는 글을 올렸다. 

 

2004년에 데뷔, 시오후키의 여왕이라고 불리우던 아카네 호타루, 

은퇴 이후엔 에이즈 방지 캠페인 활동을 하는 것으로도 많아 알려져 있었다. 

 

그녀의 죽음을 애도하며 그녀의 대한 모든 것을 되돌아 보는 시간을 가져보았다.






[사진1] 아카네 호타루 (아키즈키 안나)




  이름 : 아카네 호타루 Hotaru Akane 紅音ほたる (あかね ほたる)

           = 아키즈키 안나 Anna Akizuki 秋月杏奈 (あきつき あんな)


  생년월일 : 1983년 10월 25일 출생(오사카).


  신체사항 : 157cm. B83(E65)-W58-H83. 




  2000년대 중반 활약했던 레전드 AV여배우. 타치바나 리코, 노아와 함께 치녀 3대장으로 불렸으며, 카토 타카와 함께 시오후키(潮吹き; 물총)를 대중화시킨 장본인으로 꼽히고 있다. 워낙 시오후키에 특화된 인물이라 일본에서는 "시오후키의 여왕", 한국에서는 "물타루"라는 애칭으로 불리고 있다. 가수 겸 배우 남규리 씨를 닮았다고 "귤타루"라고 부르기도 한다.




"만15살 때 53살 아저씨와 교제하고 있었어요. 어느날 그 남자에게 AV를 보여달라고 했죠. 유키 마이코 씨의 영상이었는데, 매력적이었다고 할까 압도되어 가만히 보고만 있었습니다. AV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그 때부터였습니다." - 아카네 호타루[1]




  어린 시절, 엄격한 영재 교육을 원했던 어머니 밑에서 학대를 받으면서 자라왔다. 고등학교로 미용사 견습학교를 졸업하고 간호전문학교에 진학했지만, 집안 사정이 어려워지는 바람에 1년 만에 중퇴했다. 이후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거쳤고, 그러던 중 친구가 단란주점 면접 보러가는 걸 따라갔다가 AV여배우를 제안받았다고 한다.






[사진2] <충견 사세코>(미디어스테이션[2], EXT-015). 아카네 호타루의 데뷔작이다.


  2004년 2월 20일, 아카네 호타루는 "아키즈키 안나"라는 이름으로 AV에 데뷔했다. 방년 만20세. 전속 메이커 없이 인디즈를 전전하는 키카탄 여배우였다.[3] 호타루는 원래 피부가 검은 편이었고 평소에도 갸루 스타일을 즐겼다. 데뷔작을 비롯해 초창기에 찍은 세 편의 기획물에서도 갸루 컨셉으로 활동했었다.


  하지만 소속 사무소 사장이 갸루 스타일을 탐탁치 않아했기 때문에 곧 로리계로 컨셉을 바꾸어야만 했다. 사장이 대놓고 "로리타가 되어줘야 일을 할 수 있겠어."라고 했기 때문이다.






[사진3] <디지털 모자이크 Vol.053 아키즈키 안나>(무디즈, MDED-300).


  로리계 미소녀는 가장 대중적으로 인기가 많은 취향이었고, 아카네 호타루도 서서히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언뜻 촌스러운 외모였지만서도 수수한 매력이 있었고, 간사이 지방 사투리를 구성지게 구사하는 건 모에 포인트였다. 수줍어하면서도 음탕한 기질이 엿보여 "소악마계(小悪魔系)"라는 별명도 얻었다.






[사진4] <역강간 학생회장!! 어...!? 아키즈키 안나의 소악마적 속사정>(아이에너지, IESP-077).


  2004년 9월 9일에 발매된 <역강간 학생회장!! 어..!? 아키즈키 안나의 소악마적 속사정>(아이에너지, IESP-077)은 아카네 호타루 연기 경력에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다. 학생회장인 호타루가 교내 풍기를 단속하기 위해 남자 양아치들을 역강간한다는 내용인데, 여기서 처음으로 시오후키(물총)가 등장한 것이다.

   
  제작사 아이에너지 측은 아키즈키의 탁월한 재능을 알아보고는, <아키즈키 안나의 시오후키 여왕 전설>(IESP-080), <절정 시오후키 이카세 전라 근무 아키즈키 안나>(IESP-084) 등등 그녀의 시오후키를 특화시킨 작품들을 연달아 발매했다. 아이에너지라는 막장계 큰손의 화력을 지원받은 아카네 호타루의 전매 기술은 대중들에게 신선한 자극이었고, 엄청난 고정 팬들을 쌓아갈 수 있었다.







[사진5] <구속 이카세 시오후키 트랜스 아카네 호타루>(아이에너지, IESP-088)

이 때부터 아키즈키 안나 대신에 아카네 호타루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한편, 호타루는 로리 기믹에 계속 불만을 갖고 있었다. 그건 자기한테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어느날 호타루는 "에라이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전신을 태닝해버렸다. "그만둘 셈이냐?"라는 소속사 사장의 말에 "그만할게요."라고 대답해버렸고, 그렇게 사무소를 옮겼다. 


  소속사무소를 바꾼 그녀는 아키즈키 안나에서 "아카네 호타루"로 개명하고 2004년 12월 4일 발매한 <구속 이카세 시오후키 트랜스 아카네 호타루>(IESP-088)를 기점으로 초창기 컨셉이었던 갸루로 복귀했다. 구릿빛의 살결은 잔근육으로 다부진 몸매를 보다 육감적으로 과시할 수 있게 했고, 로리계에서 탈주하면서 시오후키는 훨씬 더 격렬하고 거칠어졌다.


  이후 시오후키를 기획으로 한 작품이 굳이 아니더라도, 그녀가 출연한 작품은 거의 대부분 시오후키가 한번 이상은 등장했다. 당연히 시오후키에 관한 에피소드도 많았다. 





[사진6] <시오후키 43연발 일본기록수립 아카네 호타루>(아이에너지, IDOL-003)


[사진7] <슈퍼 슬로우 모션 ~ 아카네 호타루 첫 붓카케와 시오후키를 천천히 보여드립니다>(SOD크리에이트, SDDM-675)


  호타루 이전에도 AV에 시오후키가 없었던 건 아니다만, 그리 흔히 쓰이는 기술은 아니었다. 그리고 호타루의 시오후키는 뭔가 남달랐다. 양도 많았고, 천장까지 물이 닿을 정도로 압력도 어마어마하게 셌다. 카메라를 고장내는 일도 많았다고 한다.


  뿜어내는 양이 많으면 탈수 증상이 오기 때문에 수분 보충이 중요했다. 실제로 아카네 호타루는 촬영 도중에 어지러움과 이명을 느껴 야간응급실로 이송된 적이 있었다. 차마 시오후키 때문에 탈진했다고 하기엔 민망해서 "땀을 많이 흘렸다"고 했더니, 의사가 "물보다는 포카리 스웨트를 마셔라"고 조언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후로는 촬영 현장에는 항상 포카리 스웨트가 비치되어 있었으며, 1회 촬영에 보통 5리터 정도 마셨다고 한다.[4]






[사진8] <버서스 아카네 호타루 vs 타치바나 리코>(앨리스 재팬, DV-825)

치녀계의 두 거물이 섹스 맞대결을 펼치는 작품.


[사진9] <여자는 거짓말쟁이: 암녀 앤솔로지 AV 오픈 버전 노아 x 아카네 호타루>(아우다즈 재팬, OPEN-0602

또 다른 치녀계의 거물 노아는 아카네 호타루와 사적으로도 매우 친분이 깊은 사이였다. 



  AV여배우에게 "연기력이 좋다"는 말은 중의적인 의미를 지닌다. 보통 "연기력이 좋다"고 하면 배우가 맡은 배역을 잘 표현해낸다는 의미지만, AV에서는 성행위를 맛갈나게 잘 한다는 의미도 지닌다. 아카네 호타루는 후자의 의미에서 연기력이 좋은 배우였다. 그녀는 색(色)을 밝히는 치녀였다.


  아카네 호타루가 업계의 샛별로 떠오르기 시작하던 2004년 하반기는 "치녀"가 슬슬 트렌드로 자리잡던 시기이기도 했다. 아사카와 란(朝河蘭)에서 사쿠라다 사쿠라(桜田さくら)로 이어지는 치녀계에 활력을 불어넣어준 건, 김본좌의 그녀 타치바나 리코(立花里子)였다. 밑바닥 무명생활부터 시작한 타치바나 리코가 조금씩 입소문을 얻으면서 그녀를 중심으로 치녀 붐이 형성된 것이다. 슬렌더 몸매로 인기가 있던 토리고에 노아(鳥越乃亜)도 2004년 7월 노아(乃亜)로 개명하면서 조금씩 치녀 기믹을 내비치기 시작했다.


  이듬해인 2005년은 타치바나 리코, 노아, 그리고 아카네 호타루, 이렇게 치녀 3대 천왕이 기획물들을 휩쓸고 있었고, 타치바나 리코의 총집편 중 하나는 2004 X-CITY 시상식에서 기획물 부문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했고, 주간 플레이보이에서 주최한 2005 AV 아카데미시상식에서는 아카네 호타루를 최우수신인상에 선정했다. 2005년은 단연 "치녀의 해"라고 불러도 과언은 아니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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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 불토리 bultori@naver.com
     세상만사를 덕질로 귀결시키는 변태



[1] 오마이 뉴스 일본 2008년 4월 16일자.


[2] 미디어스테이션은 "우주기획" 라벨로 유명하지만, 아카네 호타루의 데뷔작은 <충견 사세코>는 EXERT 라벨에서 출시됐다. 아카네 호타루가 아니었다면, 있는 지도 몰랐을 정도로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라벨이다.


[3] 흔히들 헷갈려 하는데, 키카탄은 전속 메이커가 없는 것이지, 소속사무소가 없는 게 아니다. 영상을 만드는 AV메이커와 배우들을 매니지먼트해주는 소속사무소는 서로 다른 개념이다. 


[4] 2008년 <주간 플레이보이> 9월 15일호에서 인터뷰한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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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별이
    • 2016.08.30 20:26 신고
    불토리님 좋은 글 잘보고 갑니다.
    • 뉴스확인중
    • 2016.08.30 20:57 신고
    이 글보고 다른뉴스 봣는데...
    이분 급사하셧다네요...원인은 천식같다는데

    윗글은 내리고 고인의 명복이나 빌어주면 좋겟습니다.
    • 네 알고 있고요 추모하기 위해서 일대기를 정리하고 있습니다^^

      생전에 아카네 호타루는 이런 말을 했죠. "AV를 시작하고 한번도 후회한 적 없다. 그건 내 인생에서 가장 즐거운 일이었으니깐."
      • 어머니
      • 2016.08.31 01:01 신고
      방구석 딸잡이가 불만도 많으시네...
    • 아수라
    • 2016.08.30 23:10 신고
    이 분이 노모 찍기도 전에
    sns에 자기 "꽃잎"을 올린 그 처자 맞나요???

    그 정도면 천직을 찾으셔서 결단코 후회는........
    • 데빌메시아
    • 2016.09.01 21:58 신고
    좋은 곳에서 행복해지시기를 바랍니다.
    • 흥하자
    • 2016.09.02 17:21 신고
    시오후키는 진짜 인건가요??
    • 아뇨 ㅎㅎ 그거에 대해서는 이 글 3편에 얘기되어 있을 겁니다 곧 올릴게요